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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내 두발로 완성한 ‘한라산'
에세이
걸어서 백록담까지, 31km의 무한 도전
#한라산#제주도#제로 포인트 트레일#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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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여행지를 현실로 가져온다는 것

누구나 마음속에 가고 싶으나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곳이 있을 테다. 나에게는 국내에서 ‘한라산’이 그런 곳이었다. 어려서부터 제주도 여행은 여러 번 했지만, 한라산은 지나가다 멀리 보이는 곳 중 하나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는 것만으로도 지레 겁먹고 가지 못했다. 여러 길과 산을 다니면서 이제는 그곳을 두 발로 직접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라산 등산 정보를 검색하던 중 우연히 '제로 포인트 트레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등산로 입구가 아닌 제주 시내 해발 0m에서부터 1,947m 정상 백록담까지 약 31KM 정도를 온전히 나의 두 발로 다녀오는 도전 프로그램이다. 3월 생일을 기념으로 기억에 남는 도전을 하고 싶었다.

#나의 여행은 내가 결정한다.

하루에 31km를 걷는 무모한 도전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의 반응은 대부분 ‘Why?’였다. ‘왜 굳이 그 고생을 사서 해?’, ‘헬기 부르는 거 아니야?’와 같은 반응이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갔을 때 반응과 똑같다. 물론 걱정과 우려가 담긴 반응이겠지만 매우 힘 빠지는 순간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전 당일에 비가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전날까지도 고민했다. 누군가의 조언으로 결정한다면 그 또한 후회가 남겠다는 생각에 나는 그대로 출발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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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새벽을 열다.

제주 시내에서부터 관음사 등산로 입구까지 걷는 경험은 이번이 아니었다면 평생 해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새벽 4시의 제주 시내는 잠들어 있는 느낌과 동시에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도시를 걸었다. 도시를 점점 벗어나면서 빗소리와 냄새가 더 잘 느껴졌고, 핸드폰 알람으로 듣던 새소리는 숲 한가운데 나를 데려다 놓은 것처럼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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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열어주지 않는 한라산의 길

한라산 백록담까지 오르고 내리는 등산 코스는 확실히 긴 시간과 체력이 필요하다. 안전을 위하여 코스별 중간 지점인 대피소와 정상에는 통제 시간이 있다. 특정 시간이 지나면 구간을 통제해서 정상으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힘겹게 올라가는 동안 그런 안내문을 발견하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올라갈 때는 주변을 둘러볼 새 없이 급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풍경 또한 보이지 않아 내심 서운함을 내비치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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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또는 혼자 걷는 길

함께 출발했던 일행은 등산 탐방로 입구에 들어오면서부터 서서히 멀어졌고, 결국 우리는 서로의 위치와 컨디션만 공유하며 따로 걷게 됐다. 이 또한 나만의 걷기 방법이었다. 어려서부터 항상 누군가와 함께해야 했던 우리나라의 문화에는 ‘혼자’ 가지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대화도 나누고 심심치 않게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혼자 걸을 때는 온전히 나의 컨디션과 생각에 잠기며 걸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함께 걷는 것만큼 혼자 걷는 것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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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여행길

깨끗하고 물이 담긴 백록담을 보는 것은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썰(?)이 있을 정도로 보기 힘들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심지어 출발하는 날 비가 오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백록담을 기대하지 않았다. 급격한 체력 저하로 점점 늦어지는 일행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점차 날씨가 맑아졌다. 새벽부터 비를 맞으며 걸어온 것에 대한 보상인 건지 눈앞에서 매우 또렷한 백록담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백록담을 보면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계속 나왔다. 비가 온다는 이유로 출발조차 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경관이다. 그리고 나만의 속도로 빠르게 올라왔어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의 첫발을 내디딘 내가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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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흔적의 연속이다.

등산 일정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올라올 계획이었던 우리는 사전에 예약한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체력이 급속도로 떨어져서 등산객 중에서 아마 거의 마지막 순서로 하산을 했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한라산을 오랜 시간 머물며 즐겼으니 괜찮다. 우리가 참여했던 ‘제로 포인트 트레일’은 인스타그램에 실시간으로 도전자들의 상황을 공유하고, 도전자마다 이야기를 담아서 게시물을 올려주셨다. 특별하게 여행의 흔적을 남기는 느낌이었고, 도전에 대한 실패와 성공이 아닌 시작에 대한 응원과 그 과정을 더 들여다보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한라산도 나에게 의미 있는 흔적으로 남았다. 물론 근육통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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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씨스터

배낭 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2번 다녀온 여행자
현재는 매 주말마다 백패킹이나 등산을 다니며 추억 쌓고 있다.

하은주 @ha.s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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